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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西安)은 중국 섬서성(陝西省)의 성도로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이자 교육도시 중의 하나이다.
인구는 약 700만 명으로 중국내륙의 정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과거 동양과 서양의 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시발점으로, 그 당시의 서안이 누렸을 경제적, 정치적 힘이 어느 정도였는데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서안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도시인만큼 시내나 시외 곳곳에 볼거리가 많다.
우리에게는 서안보다는 오히려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고도(古都)이다.
오늘날 서안은 중국의 신흥 내륙 공업 지역 가운데 하나이며, 70여 개의 대학과 연구소들을 갖춘 교육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은 중국의 군수 공장, 우주연구센터 등 핵심적인 산업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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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진시황병마용(秦始皇兵馬俑)은 1974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 다가 우연히 병마용을 발굴했다고 한다. 병마용이란 흙으로 빚어진 병사와 말을 가리키는데, 진시황의 사후에 그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상징적인 것이다. 1974년에 발견된 후로 현재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3개의 갱(坑)이 발굴되었는데, 그 가운데 1호갱에만 6,000여 병마가 실물 크기로 정연하게 늘어서 있어 금방이라도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들고 달려나올 것만 같다. 이들 병사 용은 하나같이 표정이 다르고, 손에는 무기를 들고 있다.

 

 

 서안에서 진시황릉병마용갱박물관 도착 직전에 낮은 야산처럼 보이는 것이 진시황릉(秦始皇陵) 인데,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여기에 묻혀 있다. 전한의 역사가 사마천에 의하면 진시황은 그가 황제가 된지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이 능을 만들기 시작, 36년만에 완성했다고 하는데 그 때는 이미 진시황이 죽은후였다. 세계적으로 개인을 위한 묘로서는 최대의 크기이다. 능의 높이는 약 79m, 동서 475m, 남북 약 384m로, 사람이 다니는 길이 나있으며, 능의 봉분 뒤에는 석류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다. 무려 70만명의 부가 동원되었다고 하는 거대한 무덤속에는 숲과 산이 있고, 황실 보석창고 그리고 거대한 석각중국지도가 있다고 한다. 능속에는 도굴을 막기 위해서 기궁이라는 자동발사되는 화살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무 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야산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1987년 유네스코는 진시황릉을 <세계유산목록>에 넣었다

 

 

 화청지(華淸池)는 서안에서 25㎞정도 떨어진 여산(驪山)산록에 있는 온천이다.
역대 제왕이 행궁별장을 세워 휴양했던 곳이며 당나라 말엽 양귀비와 현종이 사랑을 나누었 던 곳으로 유명하다. 화청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전해지는 역사에 의하면 서주시대에 이곳에 여궁을 세웠으며, 진대에는 이곳에 석우, 당나라 현종시대에는 이곳을 더욱 크게 넓혔고 이름을 "화청궁"이라 고쳤다. 또한 이곳이 온천위에 지워졌으므로 "화청지"라고도 불리 웠다. 756년 안록산의 난으로 화청지는 불에 타서 훼손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된 것은 청나라말부터 시작하여 1958년 대규모의 문화재 복원사업을 진행하면서이다.
이곳은 또한 1936년 12월에 서안사변(西安事變)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장개석은 장학량 (張學良)에게 공산당 토벌을 명하려 왔다가 국공합작을 주장하던 장학량에게 쫓겨 이곳에 숨어 있다가 결국 체포되어 국공합작이 이루어졌다.
양귀비가 목욕을 했다는 해상탕(海常湯)은 지금도 섭씨 43도의 온천물이 가득한데 일반인에 게 공개되므로 몸을 담가 볼 수도 있다. 이 화청지의 온천은 광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목욕 후에는 기분이 상쾌해지며, 관절염과 피부병에도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중국 국가에서 보호하는 중요 문물 보호단위이다.

 

 

 비림(碑林)은 1087년 북송 철종 2년에 개성석경을 보존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현재 한(漢)대 부터 청(淸)대에 이르기까지 각 조대의 비석과 1천여개의 묘비가 전시되어 있는데, 비석들이 모여 마치 '숲을 이룬 것 같다'하여 '비림(碑林)'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개성 석경은 114개의 석판에 유교경전 13경(655,025자)을 조각한 것으로, 여기에 당대 명필 구양순과 안진경,이양수 등의 친필 석각과 조철, 소식, 조맹부 등 명사들의 진적비등이 집중 되어 있다. 비림은 중국 고대 서예 예술의 보고 이자 고대 문헌서적과 비석의 조각 도안 등 이 집대성되어 있는 곳으로, 대외 문화 교류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섬서성 박물관 안에 있지만, 박물관보다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서안에서 가장 기념될 만한 비석 탁본을 구매 할 수 있는데 탁본실에서 판매하는 것과 탁본 위에 작은 도장이 새겨져 있는 것만 진품이다.  
현재 모조품이 상당히 많으니 구매할 때 주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

 

 

대안탑(大雁塔)은 서안시 남쪽 4㎞지점의 자은사(慈恩寺) 경내에 있는, 서안시의 상징적인 탑 중의 하나이다. 서유기로 잘 알려진 당나라의 소승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의 번역 과 그것을 소장하기 위해 정부에 건의하여 세운탑이다. 처음에는 5층탑이었으나 뒤에 10층으로 증축되었고 전쟁중의 화재로 일부 허물어졌다가 다시 복구되었다.
현재는 높이 64m, 둘레 25m의 7층탑으로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뛰어나다.

 

소안탑(小雁塔)은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다녀온 당나라 승려 의정이 귀국시 운반해온 4백부의 경전을 번역하기 세운 탑이다.
초기에는 15층으로 높이가 45m나 되었다고 하는데 명나라 때 꼭대기 2개 층이 소실되어 높이 42m의 13층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 탑은 복구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있어서 당나라 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시 중심에 있다. 외관 3층, 내부 2층의 누각으로, 1384년에 시간을 알리기 위해 세워졌는데 1582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외기둥 양식으로 지은 진기한 건물이다. 종루 위로 올라가(유료) 시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으며 사진을 찍는데 안성맞춤이다.

 

742년에 창건된, 당(唐)의 현종(玄宗) 때부터 존속해 온 유서 깊은 이슬람 사원이다.
지금도 매일 예배시간이 있는데 그때에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시안에는 3만 명 이상의 이슬람교도가 있으며 이 근처에 많이 거주한다. 고루의 서북쪽 코너에 있는 화각항(化覺巷) 내에 위치해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크고 오래되었으며, 현재에도 보존이 잘 된 이슬람사원이다. 중국의 전통 건축 풍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슬람교 사원만이 지니는 특색을 동시에 품고 있다.

 

원년(742년)에 지어졌으며, 송, 원, 명, 청대로 이어져 가면서 점차 규모가 커져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전체 면적은 13㎢이며, 건축 면적은 5㎢이고, 동서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장방형의 모습을 띄고 있다.
사원 내에는 약 600여점의 그림이 있고, 천명이 동시에 절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최근 20년간 세계 80여개 국가의 여행객들과 50여만 명의 이슬람 신도들이 방문을 했다.

 

1368년에 원(元)을 무찌른 명(明) 왕조는 당의 도읍이었던 장안성(長安城) 의 기초 위에 새로이 성을 쌓았다. 1421년 베이징으로 천도하기까지 약 50년 동안 이곳이 중국의 중심이었다. 그 성벽의 길이는 동쪽 2590m, 서쪽 2631m, 북쪽 3244m, 남쪽 344m 높이는 12m이다. 위는 폭 12∼14m의 화랑으로 되어 있고, 일부는 수리하여 오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곳은 거리의 소음도 들리지 않고 역사의 흐름을 실감 하는 데 적격이다. 여름밤에는 비어 가든도 문을 열어 쌍쌍의 남녀로 붐빈다.

 

역 근처 혁명공원 옆의 七賢坊(칠현방)에 있는, 항일전쟁 당시의 혁명 근거지이다.
표면적으로는 독일인의사의 치과의원이었는데 실제로는 옌안(-安)으로 들어오고자 희망하는 사람에게 신분증을 발행해 주는 곳이었다. 저우언라이. 주더(朱德), 등샤오핑, 예젠잉(葉劍英) 등 중국공산당 간부도 여기서 지낸 적이 있으며, 당시의 거실이 지금도 남아 있다. 또한 캐나다 인 의사 베쑨이나 에드가 스노도 옌안으로 들어오기 전 이곳에 체류한 적이 있으며, 국경을 넘은 전사들의 족적도 새겨져 있다.

 

그 외 흥경궁공원  興慶宮公園  (싱칭궁궁위안), 섬서역사박물관 , 함양 박물관, 소릉 , 건릉, 양귀비묘, 무릉 등이 있다.